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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점점 좁아지는 지구촌

세계가 시공간적으로 매우 가깝게 다가오는 시대를 살고 있다.  더욱이 코로나는 세계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줬다. 그야말로 지구촌이다.   미국 이민 붐이 불었던 70년대 말 히트한 ‘나성에 가면’ 이란 노래에는 이런 가사가 있다. ‘나성에 가면 편지를 띄우세요/ 사랑의 이야기 듬뿍 담은 편지/ 나성에 가면 소식을 전해줘요/ 하늘이 푸른지 마음이 밝은지/ 즐거운 날도 외로운 날도 생각해 주세요 /…. /안녕 안녕 내사랑’.       한번 가면 다시는 볼 수 없을지 모를 사람을 떠나보내는 아쉬움이 흠뻑 묻어난다. 그땐 사랑하는 사람이 펜으로 꾹꾹 눌러쓴 편지를 읽으며 울고 웃으며 그리움을 달랬던 시절이었다. 이 시기 대한민국 국민 소득은 세계 하위권이었다. 매년 수만 명이 자녀 교육을 위해, 또는 ‘아메리칸 드림’을 찾아 미국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지금은 지구촌 어디에 있든 원하는 시간에 영상통화나 메신저로 대화가 가능한 시대다. 요즘 세대가 들으면 ‘나성은 무엇이고, 편지는 또 뭐지?’ 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이민 간 친지나 친구들이 그리웠지만, 얼굴을 보거나 목소리를 듣는 건 언감생심이었다. 국제전화 요금은 웬만한 이는 감당하기 힘들었고, 80년대 초반까지 우리나라엔 유선전화 한 대 없는 집이 많았다. 국제우편으로 편지나 엽서를 보내 소식을 주고받았다.     봄이 끝난다는 지난 5월의 마지막 날, 호암미술관에 ‘김환기 회고전’을 보러 갔다. 김 화백은 한국 미술사에 ‘추상 미술’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연 선구자이다. 일본서 공부한 후 서울대, 홍익대의 미술대학 교수가 됐고, 파리에서 3년 활동하다 귀국해 다시 홍대 교수로 임직했다. 그 후 뉴욕에 정착해서 11년간 활동하다가 그곳에서 세상을 떴다. 초대 예술원 회원, 한국 미술협회 이사장을 역임했다.  그 유명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라는 작품은 뉴욕에서 탄생했다.     호암미술관은 경기도 용인의 깊은 산속에 있다.  차가 없으면 방문이 불가한 곳인 줄 알면서도 김 화백의 모든 작품을 거의 다 볼 수 있기에 꼭 보고 싶은 마음에 에버랜드에서 무조건 택시를 잡아타고 갔다. 그런데 올 때가 문제였다. 인적이 드문 산속에 택시가 올 때까지 무작정 기다려야 하나? 고민 중이었다. 마침 그때 미술관에서 나와 차를 타려는 젊은 부부가 있었다. 차를 탈 수 있는데 까지만 같이 갈 수 있겠냐고 물으니 흔쾌히 타라고 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LA 한인타운 근처에 산다고 했다. 부인이 김환기 화백의 그림을 너무 좋아해서 서울에 있는 ‘환기미술관’에도 갔었고 이번 회고전에도 왔다고 했다. LA 집에 김환기 화백의 복제품 그림이 있는데 이번에도 하나 샀다며 뒷좌석에 있는 그림이 들어 있는 원통을 가리켰다.     지난 7월 1일 토요일 아침, 한 신문에 눈에 번쩍 띄는 글이 있었다. 여배우 윤소정의 6주기  추모 글이었다. 윤씨는 한국 영화계 원로인 윤봉춘 영화감독의 딸이고 남편은 유명한 배우이자 탤런트 오현경씨다. 그 글을 읽으며 윤씨와의 짧은 인연을 돌아봤다.     남편이 서울에 있을 때 윤씨와 또 다른 방송인과 셋이서 함께 식사할 기회가 있었다고 한다. 이야기 중에 윤씨가 LA에 집이 있다고 했단다. 남편이 우리도 거기 집이 있는데 LA 어느 곳이냐고 물었다고 한다. “한인들이 많이 사는 곳 타운하우스다, 우리도 그곳에 산다. 몇 번지냐?”  이야기가 그렇게 흐르다 보니 세상에나!  작은 공터를 사이에 둔 우리 집 바로 다음 번지였다고 한다. 그때 윤씨는 LA에 있는 식당을 남에게 맡겨 운영하고 있었다. 얼마 후 윤씨 부부와 우리 부부가 함께 LA에서 만나 밤새도록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놓았던 적이 있다. 그 후 그녀를 만난 적이 없는데 타계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올봄에 큰아들이 한국에 다녀갔다. 가을에 동생과 함께 또 오겠다고 해서 내가 갈 테니 내년에 오라고 했다. 전에는 부모인 우리가 애들 보러 LA로 가곤 했는데 요즘은 거꾸로 됐다. 한국에 사는 주위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니 미국에 사는 자녀들이 전에 없이 한국에 자주 온다고 했다. 그만큼 한국이 잘사는 나라가 됐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미국에 처음 갔던 30여년 전만 해도 미국에서 한국으로 오는 사람은 드물었다. 반면 LA는 휴가철이면 한국에서 오는 손님들로 몸살을 앓았다. 요즈음은 한국이 미국에서 오는 손님들로 북적인다.     며칠 전, LA의 같은 교회 다니는 이 권사와 통화를 했다. 나도 잘 아는 권사 가족이 한국으로 아주 떠났다는 소식을 전해줬다. 이제는 말도 잘 통하는 고국에 가서 편히 쉬고 싶다고 했단다. 이 권사는 최근 한국으로의 역이민이 늘고 있다며 한국의 급격한 발전으로 오히려 더 좋은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인 듯하다고 했다.   한국은 현재 세계 10위 경제 대국이 되었다. 도움을 받던 나라에서 도움을 주는 나라로 성장했다. 코리안 드림을 찾아 세계 곳곳에서 한국으로 모여든다.  이번 한국방문서 놀란 것은 외국인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는 거다. 특히 TV 예능프로 등에 출연하는 사람들의 한국어가 너무 유창해 감탄했다.     거기에는 아마 한류열풍을 불러일으킨 BTS의 인기도 한몫 한 것 같다. 그들의 엄청난 영향력 덕분에 한국을 향한 관심과 호감도가 높아졌다. 지난 6월 열렸던 BTS 10주년 행사에는 전 세계의 ‘아미’ 수만 명이 서울에 몰려들었다.       세상 참 많이 변했다. 인터넷을 비롯한 정보통신의 발달로 종래의 거리 개념이 없어졌다. 국가 간의 경계도 무너졌다. 서울에 앉아서 세계 도처의 뉴스를 보고 들으며, 지구 반대편 나라 거리의 골목까지 나온 세계지도를 볼 수 있는 세상이다.  세계화라는 말 그대로 지구촌이 하나의 생활단위가 되었다.  ‘나성에 가면 편지를 보내세요’는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이야기다. 배광자 / 수필가수필 지구촌 한국 미술협회 한국 미술사 한국 영화계

2023-08-31

식민지에도 정체성 형성한 한국 근대미술

LA카운티 미술관(LACMA)이 ‘사이의 공간:한국미술의 근대(The Space Between:The Modern in Korean Art)’ 전시회를 9월11일부터 2023년 2월19일까지 레스닉 파빌리온에서 개최한다.     LACMA는 “한국 미술계가 서구 문화를 접하게 되면서 한국의 현실에서 재해석해 자신들의 정체성을 형성해가는 근대 미술의 발전 과정을 살펴보기 위해 이번 전시를 기획했다”고 밝혔다.     서양 문화권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사이의 공간:한국미술의 근대’ 전시회에는 유화, 사진 및 조각을 비롯해 서양으로부터 수용한 새로운 예술 양식을 반영한 88명 화가의 총 130여점이 전시된다.     LACMA는 “한국이 마지못해 근대화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한국은 일본의 제국주의 야욕과 민족 언어와 문화 말살 시도에 대응해 새로운 민족주의를 발전시켰다”며 “미술계는 일본을 통해 들어온 서양의 영향으로 한국 미술에 대한 해석과 실험의 시기를 맞이하며 한국 미술의 미래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사이의 공간’에서 전시되는 작품들은 한국의 근대 미술이 일본 식민지 시대와 한국전쟁의 상처 깊은 시련과 함께 외부의 영향으로 인해 그리고 그런 영향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발전했는지를 보여준다.     이번 전시는 근대와의 조우, 근대적 반응, 모던의 모멘텀, 신여성의 등장, 현대로의 발전 등 5개 전시구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1897년부터 1965년까지 연대 순으로 보여주는 이번 전시에서 대한제국 시대(1897~1910)와 식민지시대(1910~45)에 일본을 통해 유럽의 영향을 받은 미술과 전쟁의 혼란한 시기와 전후 미국의 영향을 받으면서 실험해 가는 과정을 살펴보고 현대 초기의 미술을 엿볼 수 있다.     한국 예술 부문 큐레이터인 버지니아 문 박사가 기획한 이번 전시는 '더 현대 프로젝트 한국 미술사 연구' 프로그램의 두 번째 전시회다.     2015년부터 현대자동차가 LACMA가 체결한 10년 장기 파트너십에 따른 전시로 한국 국립현대미술관(MMCA)과 공동 주최된다.     마이클 고반 LACMA 최고경영자(CEO)는 “'사이의 공간' 전시는 한국 미술사에 있어서 엄청난 변화의 시기를 조명해보고 다른 문화와의 접촉과 교류를 통해 예술가들이 어떻게 새로운 창작의 길을 걷게 되었는지를 보여준다”며 “한국 이민자가 많이 거주하는 LA에서 이런 중요한 이야기를 공유할 수 있어 기쁘다”고 밝혔다.   ▶주소: 5905 Wilshire Blvd. LA   ▶문의: (323) 857-6000 이은영 기자근대미술 식민지 한국 국립현대미술관 한국 미술사 한국 미술계

2022-08-28

현대, LACMA서 한국 근대미술전

현대자동차는 LA 카운티 미술관(LACMA)에서 ‘더 현대 프로젝트’의 7번째 전시이자 한국 미술사 연구 프로그램의 두 번째 프로젝트인 ‘사이의 공간:한국 미술의 근대(The Space Between: The Modern in Korean Art)’를 오는 9월 11일부터 내년 2월 19일까지 개최한다고 12일 밝혔다.   이번 전시는 한국 근대 미술의 형성 시기인 1897년부터 1965년까지 활발히 활동하며 영향을 주고받은 작가 88명의 작품 130여점을 선보인다.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미술품 63점을 비롯해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소장품 등 평소 대중에 공개되지 않은 여러 작품도 감상할 수 있다.   6·25 전쟁 이후 근현대 시기로 이어지는 과도기 시절의 유화, 사진, 조각 등 다양한 분야의 작품들을 하나의 선상으로 엮어내 근대 시기 한국 미술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할 예정이라고 현대차는 전했다.   특히 한국 근대 시기를 주제로 한 대규모 전시를 서구권 미술 기관에서 선보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전시는 현대차와 LACMA의 10년 장기 파트너십 가운데 한국 미술사 연구 프로그램 일환으로 장기간의 연구와 기획을 통해 마련됐다. 영문 도록도 함께 출판된다.   마이클 고반 LACMA 관장은 “이번 전시는 다른 문화와의 접촉 및 교류를 통해 작가들의 새롭고 다양한 창의적 시도들이 등장한 한국 미술사의 중요한 전환점이던 근대 시기를 조명한다”며 “장기 파트너십을 통해 한국 미술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나눌 수 있도록 지원한 현대차에 감사하다”고 말했다.이건희 근대미술전 한국 근대미술전 한국 미술사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2022-07-12

[중앙 칼럼] 체스터 장·스티븐 리틀 박사의 대화

“화가들은 자신들이 그린 작품에 고유의 도장이나 이름을 새깁니다. 날인 스타일에 따라 작품의 진품 여부를 결정합니다. 하지만 세월에 따라 도장이 바뀌는 화가도 있습니다. 바로 북한 화가로 유명한 김관호씨죠. 그의 작품을 분석하면 시대에 따라 날인 스타일이 다릅니다.”   LA카운티미술관(LACMA) 아시아관 디렉터이자 큐레이터인 스티븐 리틀 박사는 작가의 이름이 나오자마자 한국 미술의 역사를 줄줄 꿰뚫었다.     리틀 박사가 최근 들어 공부하고 있는 이중섭 화가 이름도 나왔다.     “이중섭 화가의 그림을 분석하니 재미있는 게 발견됐습니다. 그가 쓴 검은색 물감이 진짜 검정 물감이 아니라는 거죠. 성분 분석 보고서를 보면 검은색은 동물 뼈를 태운 것입니다. 물감을 살 돈도 없을 만큼 가난해 검은 숯으로 변한 동물 뼈를 사용해야 했던 당시 예술가들의 삶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리틀 박사가 설명한 작품 감정 보고서는 체스터 장 박사가 보여주는 다른 박스 안에 담긴 종이 뭉텅이에 있었다. 이 박스엔 장 박사가 소장한 미술품을 분석한 보고서들이 담겨 있었다. 보고서는 도자기나 그림의 색상과 재질, 재료까지 자세히 분석했다.     LACMA에 자신이 소장한 한국 미술품 1000여점을 기증하기로 한 장 박사는 그 기록들도 모두 미술관에 보낸다. LACMA가 앞으로 기증받은 한국 미술품을 활용하는데 필요한 기초 자료이기 때문이다.     장 박사가 자신의 미술품을 감정하기 시작한 때는 1960년부터였다고 했다. 지금도 미술 감정 기술을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영국에까지 작품을 들고 가서 감정을 받았다고 했다.     감정하는데에도 거액의 돈을 들였다는 장 박사는 “지금 생각해도 가장 잘한 일 같다”고 말했다.     “감정하겠다고 결심하기 쉽지 않아요. 진품으로 확인돼도 잠을 못 자고 가짜로 판정받아도 잠을 못 이루기 때문입니다. 홍콩의 부호는 감정을 받으러 왔다가 그냥 포기하고 돌아갔어요. 하지만 난 두려움을 깨뜨리기로 결심했습니다.”   리틀 박사의 이야기를 듣던 체스터 장 박사가 의자에서 일어나 주섬주섬 작은 항아리 하나를 꺼내며 한 말이다.     청록색 바탕에 새가 그려진 작은 항아리는 마침 햇살을 받아 보석처럼 반짝였다.   그가 가져온 이 작은 항아리는 이중섭 화가가 당시 남긴 도자기라고 했다. 항아리 바닥에는 이중섭의 이름을 알려주는 날인이 선명했다.     “한국전쟁 시절 부산에 그릇을 만들던 가마가 딱 1곳 있었죠. 그곳은 배고프던 예술가들이 유일하게 돈을 벌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접시, 항아리 등 도자기 그릇에 그림을 그려서 팔면 돈이 됐거든요. 이중섭도 그렇게 자신의 재능을 팔았습니다. 하지만 나중엔 자신의 그림이 들어간 접시를 모두 깨뜨렸다고 합니다. 예술가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죠.”   이날 물감의 성능으로 시작된 둘의 대화는 화가의 작품 분석에서 한국과 중국의 문화 교류의 출발점까지 뻗어갔다. 둘의 대화를 듣고 있자니 마치 대학 강의 같다. 한국 미술사가 이렇게 재미있었나 싶으면서도 그 짧은 시간에 한국 미술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 찼다.     가치를 따질 수 없는 귀한 한국의 미술품을 LACMA에 기증하기로 결정한 장 박사의 결정이 새삼 존경스럽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작품들을 남가주 한인사회가 접하고 나눌 기회가 생겼다는 게 감사하다.   장연화 / 사회부 부국장중앙 칼럼 체스터 스티븐 한국 미술사 한국 미술품 리틀 박사

2021-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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